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Eat, Pray, Love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줄리아로버츠 주연의 영화로 먼저 접한 작품이다. 영화 평은 좋지 않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재밌게 본 영화였고 이야기도 많이 와닿았다. 나를 잃는 연애, 나를 잃는 결혼생활에서 벗어나 나를 찾아떠나는 여행. 현실의 삶에 지쳐서 세계여행을 떠나고 위로와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류의 이야기는 이미 많고 많아서 식상할 수도 있지만 이 이야기는 단순히 여행을 부추기거나 예찬하는 게 아니라 나에게 보다 집중하고 내 삶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느껴졌다.
[이탈리아]
27p
그와 헤어지는 것보다 더 끔찍한 유일한 길은 계속 그의 곁에 남는 것이다.
그의 곁에 계속 남는 것보다 더 불가능한 유일한 길은 그와 헤어지는 것이다.
나는 어느 것도, 어느 누구도 파괴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소란이나 파장도 없이 뒷문으로 조용히 빠져나가 계속 달리고 싶었다.
47p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법.
원하는 균형을 찾기 위해서는 이런사람이 되어야 해. 지상에 발을 꼭 붙이고 있어. 다리가 두 개가 아닌 네 개 달린 사람처럼.
그렇게 하면 속세에 머무를수 있지.
55p
우주를 향해 네가 원하는 것을 기도하면 안된다는 생각은 도대체 왜 하게 되었냐고? 넌 이우주의 일부야, 리즈. 한 성분이라고.
따라서 이 우주에서 벌어지느 ㄴ일에 참여하고, 나아가 네 감정을 알릴 자격이 충분해.
79p
이 모든 절망감의 근원은 무엇일까? 심리적인 걸까, 그냥 일시적인 걸까, 일종의 '슬럼프'처럼 , 유전적인 건가, 문화적인 건가
99p
일반적으로 미국인들은 긴장을 완전히 풀고 순수한 즐거움을 누리는 일에는 소질이 없다. 미국은 오락을 추구하는 나라지만,
즐거움을 추구하는 나라는 아니다. 포르노에서 테마파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미국인들은 스스로를 계속 재미있게 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붓지만
그것이 순수한 즐거움과 같은 맥락은 아니다.
벨 파 니엔테 (bel far niente) '빈둥거림의 미덕'
이탈리아어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술(I'arte d;arrangiarasi')이라는 또 하나의 멋진 표현이 있다. 간단 몇 가지 재료만으로
진수성찬을 차려내는 기술, 혹은 친구 몇 명만 모아놓고도 축제를 벌이는 기술을 말한다.
꼭 부자여서가 아닌 행복을 만들어내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이런 행복을 누리기 위해 열심히 일했는지 아닌지에 대한 불안감"
"여기 사람들은 자신들이 인생의 즐거움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해봐야 유일한 질무은 "즐거움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 온전히 나에게만 초점을 맞춘 질문
105p
그냥 외로워해, 리즈. 외로움과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배워. 외로움의 지도를 만들어 평생 처음으로 외로움과 나란히 앉아봐. 인간적 경험의 세계로 들어온 걸 환영해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네 갈망을 해소하기 위해 다시는 다른 사람의 몸이나 감정을 이용하는 일은 하지마.
- 누군가와 합체되려고 애쓰지 않는 상태에서 내 진정한 모습이 무엇이고, 내 진자 말투가 무엇인지 알아본 약간의 여유 말이다.
149p
고대 인도의 요가 경전인 바가바드기타에는 불완전하더라도 자기자신만의 삶을 사는 것이 완벽한 다른 누군가의 삶을 흉내내며 사는 것보다 더 낫다는 말이 있다.
161p
로마의 단어는 섹스, 나의 단어는?
"모든 도시에는 그 도시를 정의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하나의 단어가 존재하죠.
어떤 도시건 거리에서 당신을 스쳐가는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그들 대다수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하는 생각. 그게 무엇이건 간에 그게 바로 그 도시의 단어예요.
만약 내 개인적 단어가 그 도시의 단어와 조화를 이룰 수 없다면 난 그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거죠."
"당신의 단어는 뭐요?"
"추구하다"
- 이 세상은 너무도 타락하고, 거짓 약속이 남발하고, 불안정하며, 과장되고, 평등하지 않기에 인간은 오로지 자신의 감가으로 경험한 것만 믿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믿음이 이탈리아를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도 감각적인 국가로 만들었다.
- 때로는 아름다움만이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덕목이기도 하다.
- 즐거움의 가치를 깨닫는 것이 한 개인의 인간성에 닻이 되어준다는 생각이다.
- 우리는 삶을 부여받았고,이 생애에서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뭔가 아름다운 것을 찾아내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인간으로서의 권리) 이다.
[인도]
-요가 : 합일
요가의 방침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갖는 태생적 결함을 풀어나가는 것이다.
그 태생적 결함이란 극도로 간단히 정의하자면 만족스러운 상태를 유지할 줄 모르는 가슴 아픈 무능력이다.
>도교에서는 이를 '불균형'이라고 부르고, 불교에서는 무지라 부르며, 이슬람교에서는 인간의 불행이 신에 대한 반항 때문이라고 비난하고,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에서는 인간의 모든 고통의 원인을 원죄로 돌린다.
>그러나 요가 철학자들은 인간의 불만족은 자신의 정체성을 오해한 결과하고 말한다.
우리는 스스로가 그저 두려움과 결함, 분노, 언젠가는 죽어야 할 운명을 지닌 보잘것없는 인간이라 생각하기 대문에 불행한 것이다.
우리의 한정된 작은 자아가 우리 본질의 전부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내면 깊은 곳에 존재하는 보다 신성한 특질을 깨닫지 못한다. 모든 인간의 마음속 어딘가에는 영원히 평화로운 최상의 자아가
존재한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 그 최상의 자아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아울러 보편적이고 신성한 자아이다.
이 진실을 깨닫지 못하면 인간은 언제나 절망에 빠져 있을 것이라고 요가 철학자들은 말한다.
요가는 인간이 자기 내면의 신을 경험하려는, 아울러 그 경험을 영원히 지속시키려는 노력이다.
"따라서 이 생애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마음의 눈의 건강을 회복하는 일이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열망은 우주를 움직이고, 운명의 분자들이 스스로를 재정립해 우리의 노선을 곧 우리가 필요로 하는 스승의 노선과 교차하게 된다.
구루는 언제나 아쉬람에 오게 되면 오로지 한 가지 일만 일어날 거라고 말한다.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일.
"오 크리쉬나여, 마음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동요하며, 힘이 세서 굽힐 줄을 모릅니다. 바람을 잠재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231p
"넌 놓아버리는 법을 배워야해, 먹보야. 아니면 네 자신만 괴로워져. 평생 다시는 두 발 뻗고 못 잘 거야. 인생이 요지경으로 된 걸 자기 탓으로 돌리며
영원히 뒤척일 거라고. 대체 난 뭐가문제지? 왜 연애만 했다하면 망쳐버릴까? 난 왜 이렇게 실패작일까?..."
<과잉 통제 장애>
235p
"이 세상에 뜨거운 욕조 목욕과 한 잔의 위스키, 기도서로 치유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는 없다."
236p
나는 숀의 아버지가 선천적으로 알고 있는 듯한 것을 열심히 배워야 한다. 그것은 바로 월트 휘트먼이 썼듯이 '밀고 당기기에서 벗어나... 즐겁게,
스스로에게 만족하며, 인정많게, 빈둥빈둥, 독자적으로, 게임에 참여한 동시에 벗어나 그 모든 것들을 관조하고 의아해하는" 법이다.
어느 순간이 되면 그냥 멈춰야 한다. 이 숨바꼭질은 절대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다는 걸,
그걸 기대해서도 안된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리처드가 내게 계속 말했듯이, 어느 순간이 되면 그냥 놓아버리가 가만히 앉아
만족감이 우리를 찾아오도록 허락해야 한다.
물론 세상 꼭대기에는 손잡이가 있고 자신이 몸소 그것을 돌림으로써 세상이 돌아가며, 한순간이라도 그 손잡이를 놓았다가는, 글쎄,
아마도 우주가 끝장날 거라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냥 놓아버리라는 건 너무도 무서운 충고다.
하지만 그냥 한 번 놓아봐, 먹보야. 이게 내가 받은 메세지다.
잠시 가만히 앉아 그 쉴 새 없는 참견을 멈춰보자.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지켜보자. 인생은 계속된다.
263p
비파사나 명상은 살면서 슬픔과 성가심을 피해갈 수 없지만 스스로를 고요함 속에 오래 묻어둘 수 있다면, 시간이 흐른 뒤, 모든 것(불편한 것이든, 사랑스러운 것이든)이
결국은 지나간다는 진리를 경험하게 될 거라고 가르친다.
"세상은 죽음과 부패에 시달린다. 따라서 현명한 사람들은 세상의 섭리는 알기에 슬퍼하지 않는다."
이것은 불교의 오래된 가르침이다. 다시말해, '익숙해지라는 것'이다.
- 매번 내가 처한 환경의 울퉁불퉁한 도로를 따라 질질 끌려다니는 대신, 가만히 앉아 좀더 찬는 법을 배우는게 내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269p
기도는 연인 관계와 같아서 절반은 내 책임이다.
" 변화를 원하는 데 정확히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소리내어 말하는 것조차 귀찮다면, 어떻게 그 기도가 이뤄지겠는가?
"그리하여 이제는 매일 아침마다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 지 탐색할 시간을 갖는다."
운명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지만, 반면 내 사법권 안에 속하는 것들도 있다. 나는 분명 복권을 살 수 있고,
이는 내가 만족스러워질 확률을 높여줄 것이다. 시간을 어떻게 쓸지, 누구와 만날지, 내 인생과 몸, 돈, 에너지를 누구와 함께할 것인지도 결정할 수 있다.
무엇을 먹고, 읽고, 공부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인생의 불행한 환경을 저주로 받아들일 것인지, 기회로 받아들일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
"그리고 무엇보다 내 생각을 선택할 수 있다."
"먹보야 , 넌 매일 무슨 옷을 입을까 고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슨 생각을 할까 고르는 법을 배워야해. 그건 네가 얼마든지 기를 수 있는 힘이야.
네가 정말로 인생을 통제하고 싶어 죽을 지경이라면 마음을 훈련시켜. 그거야말로 네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거니까.
마음 외에 다른건 다 내려놔. 네 생각을 어떻게 다스릴지 배우지 못하면 넌 영영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 테니까."
> 이건 억압이나 부인이 아니다. 억압과 부인은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척하는 고묘한 장치를 설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리처드가 의미하는 것은 "부정적인 생각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게 어디서 왔고, 왜 왔는 지 이해한 후, 크나큰 용서와 단호함으로 그것을 떠나보내라는 것이다."
"난 더 이상 건강하지 못한 생각드의 항구가 되지 않을꺼야. 날 약화시키는 생각이 떠올때마다 이 서약을 반복했다."
279p
"죄책감은 우리의 자아가 우리로 하여금 뭔가 도덕적인 진보를 이워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속임수예요. 거기 속아 넘어가선 안돼요."
291p
"신은 네 안에 머문다, 네 모습으로."
신은 우리 자신, 정확히 내 모습 그대로 내 안에 머문다. 신은 우리가 영적인 사람에 대해가지고 있는 엉터리 선입견을 따르기 위해
다른 사람 흉내를 내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신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성격을 엄청나게, 극적으로 바꾸어 개성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개념이 박혀있는 듯 하나다. 이는 동양에서 '오산'이라고 부느는 것의 전형적인 예이다.
스왐지는 매일 새롭게 포기할 것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얻게되는 것은 평화가 아닌 정망이라고 말했다. 그는 금욕과 포기는 무리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니라고 가르쳤다.
신을 알기 위해 포기해야 할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건 신으로부터의 분리감 뿐이다. 그 외에는 그냥자기모습 그대로, 타고난 성격 안에 머물러야 한다.
307p
'안테바신' : 경계에 사는 자
"우주를 회전하는 거대한 엔진이라고 상상해봐. 넌 그 엔진의 중심부에 머무르고 싶어하지. 한가운데 허브에 말이야.
미친듯이 빙빙 돌아가는 가장자리 말고. 가장자리에 있다간 신경 쇠약에 걸려 미쳐버릴 테니까.
허브의 ㄱ요함, 그게 바로 네 심장이야. 신이 우리 내면에서 머무르고 있는 곳이지.
그러니 세상에서 해답을 구하려는 짓은 그만둬. 그저 계속 그 중심부로 돌아가면 넌 언제나 평화를 찾을 수 있어."
[인도네시아]
아르메니아
"글쎄요, 난 중앙아케리카의 전쟁터나 난민자 캠프 한가운데서도 멋지고 여성스럽게 차려 입으려고 언제나 노력했어요.
최악의 비극과 위기 상황에 처했을지라도 스스로를 볼품없이 만들어서 다른 사람의 고단함을 가중시킬 필요는 없잖아요. 그게 내 철학이죠.
그래서 난 정글에 갈 때라도 언제나 화장을 하고, 액세서리르 해요. 지나치게 화려한거 말고 그냥 멋진 그팔찌와 귀걸이,
살짝 바른 립스틱, 좋은 향수 정도? 내가 아직 스스로를 존중한다는 걸 보여줄 정도면 충분해요."
443p
사랑에 빠져 가끔씩 균형을 잃는 게 균형 잡힌 인생의 과정
행복하고 건강하며 균형잡힌 삶.